전남
[119기고] 소방역사의 첫걸음, 금화도감의 설치
기사입력: 2016/02/26 [10:41]  최종편집: ⓒ 보도뉴스
박종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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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2월 26일)은 590여 년 전, 재난으로부터 백성을 지켰던 소방역사의 첫걸음인 금화도감이 설치된 날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화재가 일찍이 이렇게 심한 적이 없었다."(세종실록 권31). 국왕 세종이 크게 우려할 정도로 1426년(세종 8) 조선 도성인 한성에 화재가 그치지 않았다. 특히 2월 15~16일 이틀 동안 발생한 대화재는 수도를 세운 이래 최대 재난이었다.

 

2월 15일 낮 한성 남부의 한 가옥에서 처음 치솟은 불길은 때마침 세차게 불어온 서북풍을 타고 순식간에 번졌다. 대부분 집들이 초목으로 지어졌고 닥지닥지 붙어 있는 상태여서 도성 안은 금세 불바다로 변했다. 민가 2천170호와 행랑 160칸이 불에 탔고 남자 9명, 여자 23명이 사망했다. 불에 타 재로 변한 어린이와 노약자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다음날에도 다시 불이 나 민가 200여 호가 소실되었다. 단 이틀 동안 도성 안 가옥의 6분의 1인 2천400여 호가 사라져 버렸다. 화재는 북청·길주·영흥 출신의 유민 7명이 저지른 방화로 밝혀졌고, 이들은 곧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590년 전 오늘(2월 26일), 조정에서는 화재를 방비할 전담기관인 금화도감을 설치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기관인 금화도감은 제조 7명, 사 5명, 부사·판관 각 6명으로 구성되었고, 그해 6월 성문도감과 통합, 수성금화도감으로 이름을 바꾸어 화재 방지와 도성 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1460년(세조 6)에 폐지되기도 했으나, 화재가 빈번해지자 1481년(성종 12) 수성금화사로 다시 설립되었다. 금화군은 24시간 불을 감시하고 화재시 최전방에서 진압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들은 방화담과 우물을 만들고 물독을 설치하고 도로를 넓혀 화재를 대비하였다.

 

담양소방서 삼계119안전센터 김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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