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독자기고]기피시설이 된 소방서
기사입력: 2017/05/10 [09:43]  최종편집: ⓒ 보도뉴스
박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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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소방서 소방정대 소방사 진성준

서울시 금천구는 서울 25개의 자치구 가운데 유일하게 소방서가 없는 곳이다. 1995년까지는 구로구였는데 행정구역 구획에 따라 금천구로 분구되었다. 분구된 지 22년이 지났는데 아직 소방서가 없다. 금천구에서 화재가 나면 인접한 구로소방서에서 출동을 한다. 구로소방서는 구로구와 금천구, 2 개의 관할구역을 맡고, 소방공무원 1인당 가장 많은 인구를 담당하는 셈이다. 문제는 금천구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구로소방서 출동대가 도착하기까지 평균 20~30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11초로 생사가 갈리고 피해액수가 급증하는 것이 화재 현장인데, 30분 넘어 현장에 도착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와 금천구는 이러한 위험을 대비하여 금천구 독산2동에 금천소방서를 설치하는 계획에 합의를 하였다. 긴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금천구 자체적으로 신속히 화재 대응을 하고 재산과 인명의 피해를 감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해당지역 주민 400여명이 밤낮으로 울릴 사이렌 소음, 공해, 집값 하락 등을 이유로 소방서 설립에 항의를 하면서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와 금천구의 소방서 설립 계획은 난항을 겪게 되었다.

 

쓰레기 매립장, 하수처리장, 납골당과 같은 기피시설이 들어올 경우 발생하게 될 환경오염, 집값 하락 등과 같은 피해를 우려해 주민과 지자체가 집단으로 반대하는 것을 님비(NIMBY:Not In My Back Yard)현상이라고 한다. 이와는 반대로 지역에 호재가 될만한 산업교통복지시설을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유치하고자 하는 것은 핌피(PIMFY:Please In My Front Yard) 현상이라고 한다. 사회적 갈등의 정도는 핌피에 비해 님비가 더 강하게 나타나지만 두 개념 모두 지역이기주의를 표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국가적인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소방서가 어쩌다 핌피도 아니고 님비의 대상이 된 것일까.

 

벌써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3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물 속에 잠긴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도 있다. 아직도 정확한 사고 규명을 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많은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힌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초기대응을 제대로 하였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희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사회 도처에는 재난 초기 골든타임 확보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안전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이 향상되었다. 전국의 소방관서가 펼친 소방차 길터주기 캠페인도 골든타임 확보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으며, 그 결과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구급차 앞을 양옆으로 비켜주는, 모세의 기적도 더 이상 선진국만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현장 도착 시간을 1초라도 단축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이 소방관들이다. 소방관은 소방서에 항시 대기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소방서가 가까이 있을수록 안전하고 피해를 줄여준다는 장점보다는 밤낮으로 울릴 사이렌 소리, 집 값 하락과 같은 단점이 더 크게 보일 수도 있다. 독산2동 일부 주민들의 항의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공익을 위해 필요한 시설이긴 하나, 그 시설을 유지하며 발생하는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야 한다면 누구나 망설여질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시 금천구에는 소방서가 영영 들어설 수 없는 것일까?

소방차는 도로교통법상 긴급자동차로 분류되어 사이렌, 경광등, 비상등을 작동시켜 다른 차량에 긴급 상황임을 알려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 때문에 소방서 주변이 항상 시끄러운 것이다. 그런데 만약 소방서에 일정 반경을 지정하여 해당 범위 내에서는 긴급 상황 표시 의무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긴급자동차로서의 권리가 주어진다면, 출동차량은 소방서를 벗어나 사이렌, 경광등을 취명하게 되므로 소방서 인근 거주민이 소음으로부터 받는 피해를 절감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보긴 힘들지만, 다른 피해 발생에 대해서도 단계적인 대책과 충분한 보상을 통해 서로 타협점을 찾아간다면 금천소방서의 설립은 머지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도적인 문제 해결에 앞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방구급차량의 사이렌을 단순한 소음이 아닌, 위험에 처한 누군가의 긴박한 도움 요청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내 가족, 연인 그리고 나 자신일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항상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수소방서 소방정대 소방사 진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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